1. 봉화산 도당굿 정의
서울시 중랑구에 위치한 봉화산 정상의 도당에서 삼짇날 마을의 평안과 마을 사람들의 무병과 복을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굿. 2005년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34호로 지정되었다. 도당굿은 경기도 일원의 마을굿을 부르는 이름이지만 근래에는 경기도 일부 지역이 서울시에 편입되면서 서울의 일부 마을에서도 도당굿이라는 이름이 사용되고 있다. 도당굿(都堂-)의 도(都) 자는 도시(都市), 도성(都城), 도원수(都元帥), 도사공(都沙工), 도편수(都-)에서 보듯이 모두 으뜸, 우두머리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2. 봉화산 도당굿 유래
한국의 여러 지역 마을 제의는 근대에 이루어진 것이라고 보기보다는 대체로 오랜 역사와 전통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다른 지역의 모든 마을 제의가 그렇듯이 봉화산도당굿도 그 기원이나 유래를 정확히 밝힐 수 있는 옛 문헌이 없다. 근래에 서울시청이나 중랑구청 또는 중랑문화원 등에서 발간한 자료집들에서는 봉화산도당굿의 역사가 400년쯤 되는 것으로 적고 있다. 『세종실록(世宗實錄)』 권 115, 세종 29년 3월 병인에 “연대의 상단에는 가옥(假屋)을 조성하여 병기(兵器)와 조석으로 공급하는 물과 불을 지피는데 필요한 기물을 보관한다.”라는 기록이 보이고 이 기록에 의거 『봉우재 이야기』에서 도당의 연대를 400년으로 가정하고 있다.
그런데 이 건물이 처음에는 초가 단칸이었으나, 광무 4년(1900년)에 정면 4칸, 측면 2칸의 단청을 올린 기와집으로 개축되었다고 하였다. 봉화산도당을 400년쯤으로 보려는 타당성은 다른 데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것은 봉화산도당굿의 당주 계보가 방 씨(여) → 오토바이(여) → 강기순(여) → 신위행(여, 현 당주)으로 이어지고 있는데, 방 씨의 남편인 최 씨가 이곳 도당굿의 13대째 당주였다. 고로(古老)에 의하면 면목 1동의 ‘고문계(이 지역 무당들의 모임인 듯함) 최 씨 무당’ 하면 꽤 이름난 무당이었다고 한다. 신위행 현 당주의 신어머니가 곧 최 씨 부인인 방 씨 무당이다. 이러한 몇 가지 사례로 볼 때 봉화산도당의 제의는 최소 400년 이전부터 전래되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봉화산도당의 신상(神像)은 불사산신할머니로 흰색 고깔에 흰색 장삼을 입고 붉은 가사를 입고 앉은 자세이다.
이곳에 산신할머니를 모시게 된 유래에 대해 “먼 옛날 이곳에서 산신을 정성껏 모시던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이곳 마을 주민들이 이 할머니를 산신할머니로 섬기게 되었다.”라는 이야기가 마을에 전한다. 또 건물 안에는 높이 5척의 석불(石佛)이 안치되어 있었는데 언제부터인지 고깔을 쓴 산신할머니 소상으로 대체되었다고 한다. 석불에 대해서는 그 형태를 알 수 없어 그것이 불상 형태인지 또는 자의적으로 된 일반 석상인지는 알 수가 없으나, 봉화산의 도당에서 오랫동안 산신을 섬겨왔다는 것은 확실하다. 제례(祭禮)의 축문에 “봉화산 산신께 엎드려 감히 고하나이다.”라는 문구가 이를 입증하고 있다.
3. 봉화산 도당굿의 의의
봉화산은 중랑구 지역에 위치한 단일 산봉우리로서 중랑구 내의 묵동, 중화동, 상봉동, 신내동의 접점지이다. 그래서 예전에는 봉화산도당굿을 2개 마을씩 합동으로 번갈아 주관을 한 적도 있었으나 지금은 중랑구 전체의 제의로 지내오고 있다. 봉화산도당굿도 시초에는 마을 제의로서 신앙적 성격을 강하게 띠고 시작되었을 것으로 생각되나 현재에는 많은 주민의 호응과 참여로 큰 축제판을 이루고 있다. 중랑구 각 동의 유력 인사들이 봉화산도당굿을 통해 단합하게 되는 계기를 이루며, 각 동의 주민들도 함께 참여하여 본인의 가정과 마을을 위해 기원하고 사제무로부터 축복을 받으면서 모두 화합하고 즐거움을 얻는다... (네이버 지식백과에서)
봉화산 도당
* 참고로 여러 산에서 모시고 있는 산신은 남신과 여신이 있는데 봉화산의 산신은 여신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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